서울의 9월은 아트페어의 계절이다.
서울미디어시티 비엔날레 (Seoul Mediacity Biennale), STO, 한국현대미술 순회전 등이 동시에 열리며, 대한민국 미술축제 (Korea Art Festival)기간이다.

서울 전역은 세계적인 갤러리와 컬렉터, 평론가들로 가득 찬다. 그러나 이 화려한 무대를 등지고, 두 명의 작가는 뉴욕으로 향했다. 정창기와 엄재국. 그들은 STO 한국현대미술, 미술관 순회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미술의 상업화된 심장부에서 한국형 현대미술을 실험하고 새로운 차원을 제시하고자 한다.
“뉴욕은 시험대다”: 케이트 오 갤러리에서
전시 무대는 맨해튼 어퍼이스트의 케이트 오 갤러리(Kate Oh Gallery). 과거 금조성 닥가의 메트로폴리탄 테트라포트 설치 프로젝트로 현지의 주목을 받은 이 갤러리는, 단순히 작품을 걸어두는 공간을 넘어 개념적 실험의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해왔다. 이번 정창기·엄재국 초대전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 금보성 관장이 제안한 타임스스퀘어 옥외광장 홍보 프로젝트는 이번 전시를 ‘화이트 큐브’에 한정하지 않고 도시 전체로 확장시키려는 시도다. 이는 쿠사마 야요이의 호박처럼 즉각적인 시각 아이콘을 노출하는 방식과는 다르다. 개념적 여운이 남는 비주얼로, “뉴욕의 대중”을 새로운 현대미술 관객으로 초대한다.
정창기와 엄재국 :시간의 선, 공간의 압력
정창기의 회화는 전통 서예적 필획을 현대 추상의 맥락으로 전환해, 한 획마다 시간이 응축된 흔적을 남긴다. 그는 “선(線)”을 단순한 시각적 요소가 아니라, 존재와 기억을 겹쳐내는 리듬으로 제시한다.
엄재국은 설치와 조각에서 재료와 공간의 긴장을 실험한다. 콘크리트, 금속, 목재가 서로를 압박하고 균열 내는 과정은 “형태”가 아니라 힘의 맵이다. 관람자는 작품과의 거리, 체류 시간에 따라 각기 다른 긴장을 체험하게 된다.
이들의 공통점은 '한국성'을 장식이 아닌 방법(method)으로 환원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전통은 문양이 아니라 시간을 조직하는 방식, 공간을 다루는 윤리적 태도로 나타난다.
평론가 알버트 탕의 비평
“뉴욕은 결과물을 소비하는 시장이 아니라, 개념이 견디는지 시험하는 장소다. 정창기의 선은 더 이상 한국 서예의 흔적이 아니라, 시간의 압력을 시각화하는 장치다. 엄재국의 구조는 물질을 쌓아 올린 완결물이 아니라, 공간과 중력의 협상을 보여주는 드라마다.
두 작가는 ‘한국적’이라는 범주를 전통적 장식에서 벗어나 행위의 방법론으로 전환시킨다. 이번 전시는 상업화된 미술의 심장에서, ‘한국 현대미술’이 어떻게 세계의 언어로 발화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다. 단순한 전시가 아니라, 개념의 스트레스 테스트다.”

평론가 알버트 탕 인터뷰 발췌
- 이번 전시를 보며 어떤 점이 가장 인상 깊었는지
A. 정창기의 작업에서는 ‘서예적 필획’이 단순한 시각 요소가 아니라, 시간과 존재를 기록하는 몸짓이라는 점이 인상 깊었다. 엄재국의 설치는 우리가 공간을 소비하는 방식 자체를 바꾸도록 요구한다. 그것은 오브제가 아니라 체험으로서의 조형이다.
- 두 작가의 한국적 정체성은 어떻게 읽히는지
A. 그들의 작업에서 ‘한국적’이라는 말이 더 이상 지역적 특색이 아니라, 윤리적 태도로 자리 잡고 있다고 본다. 전통은 문양이나 소재가 아니라, 어떻게 행위하고 공간을 조직하는가에 담겨 있다. 그 점에서 이번 전시는 매우 보편적이면서도 특수한 울림을 갖는다고 생각한다.
“단순한 전시가 아닌, 실험”
이번 전시는 단순한 해외 진출 사례가 아니다. 화이트 큐브와 타임스스퀘어라는 이중 무대, 정창기·엄재국의 상반된 작업 세계, 알버트 탕과 같은 현지 평론가들의 개입까지. 이 모든 요소가 어우러져 “한국형 현대미술의 자립적 실험”이라는 전례 없는 모델을 보여주고 있다.
뉴욕 한복판에서 벌어진 이 실험은, 단순히 글로벌 무대에서의 성취를 넘어 한국 현대미술의 방법론적 진화를 상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