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손해보험(대표 구본욱) 직원은 지난해 8월부터 올해 3월까지 고객이 찾아가지 않은 해지환급금 14억여 원을 임의 송출하는 횡령사건이 발생했다.
더 큰 문제는 이 범행이 6개월 가까이 지속되는 동안, KB손해보험 내부 시스템이 이를 전혀 감지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보험사는 고객의 신뢰를 담보로 운영되는 곳이기에 이런 횡령사건은 치명적인 신뢰 추락으로 이어진다.
KB손해보험에서 벌어진 14억 원대 횡령 사건은 그 신뢰를 산산조각 내고 있다. 보험사가 고객의 돈을 마치 주인없는 돈처럼 슬쩍 가로챘다. 신뢰를 바탕으로 성장해야 할 금융사가 고객의 돈을 '눈먼 돈'으로 봤다면, 이 사건은 단순한 횡령을 넘어서게 되는 것이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직원 횡령이 아니고 KB손해보험 직원의 정신 상태가 얼마나 헤이한지를 가름할 수 있는 큰 사건인 것이다.
더 기막힌 것은 사건이 내부통제 시스템에 의해 적발된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직원이 이상하다고 느껴 발견했다는 점이다. 사람이 눈으로 보고 찾아내기 전까지 KB손보의 감시망은 단 한 번도 경고음을 울리지 않았던 것이다. 고객의 돈이 슬그머니 사라지는 동안, 회사 시스템은 이상한 낌새 조차도 모르고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보험금 지급은 원칙적으로 가입자 본인 계좌로만 이체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도 직원 한 명이 거액을 임의 송금할 수 있었다는 것은, KB손해보험 내부의 자금 관리 시스템이 얼마나 허술한지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내부통제가 있었다면,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작동되었다는 것인가?
KB손해보험 구본욱 대표는 위기 상황에서 조직을 대표하여 책임을 지고 신뢰를 회복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그러나 구본욱 대표이사 사장은 공식적인 사과는 물론, 고객을 향한 명확한 입장조차 표명하지 않았다.
보험금이라는 명목으로 고객이 맡긴 자금이 부정하게 유용된 사건이 발생했다면, 무엇보다 먼저 이 사안에 대한 사과와 재발 방지를 위한 구체적인 대책이 나왔어야 한다. 하지만 KB손해보험의 대응은 정작 가장 중요한 고객 신뢰 회복을 위한 노력은 보이지 않고 경찰 수사 의뢰와 내부 감사 강화라는 형식적인 절차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이번 사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형식적인 대응이 아니라, 고객 신뢰 회복을 위한 책임 있는 조치였다. 그러나 KB손해보험의 반응은 원칙적 사과와 명확한 재발 방지 대책보다는 형식적 대응에 머물렀다는 점에서 실망스럽고 재발 방지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보험은 금융상품이 아니다. 보험이 팔아야 할 것은 단 하나, 신뢰이다. 고객이 보험사를 믿고 맡긴 돈이 사라졌다면, 그 순간부터 그 보험사는 더 이상 보험사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KB손보뿐만 아니라 보험업계 전체가 이번 사건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보험사가 진짜 팔아야 할 것은 ‘상품’이 아니라 ‘신뢰’임을 명심하고 직원 정신 교육부터 다시 시켜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