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동 농협중앙회장이 억대 뇌물수수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는 가운데, 이재명 대통령이 농협을 둘러싼 반복적인 비위와 수사 문제를 공개적으로 언급하며 농협 지배구조 전반에 대한 개혁 필요성을 공식화했다. 발언의 수위와 시점을 감안할 때, 현직 중앙회장을 둘러싼 리스크를 정면으로 겨냥한 메시지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 대통령은 지난 11일 세종시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농림축산식품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농협이 문제라던데 맨날 구속되고 수사받고 난리”라며 “조합장 권한이 과도하면 농자금 배분과 관련된 문제가 반복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비상임 조합장 제도, 후보자 공개모집 등 구조 개선 방안이 논의되는 만큼 공정하고 투명하게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은 특히 “조합장이 너무 많은 권한을 갖지 못하도록 하고, 구성원들이 민주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구조로 바꿔야 한다”며 농협의 지배구조 자체를 문제의 핵심으로 지목했다. 단순한 개인 비위 차원을 넘어, 권한 집중 구조가 반복적인 비리와 수사의 토양이 되고 있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정부 차원의 대응도 속도를 내고 있다.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같은 자리에서 “현재 농협에 대한 특별감사가 진행 중이며, 익명 제보센터를 통해 지난 11월 말까지 100건이 넘는 제보가 접수됐다”고 보고했다. 제보 내용으로는 조합장 권한 남용, 회계관리 부실, 인사·사업 배분의 불투명성 등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통령은 “필요한 사안은 수사기관에 의뢰하고, 감사도 철저히 진행하라”고 주문했다.
이번 발언은 강호동 회장을 둘러싼 수사 상황과 맞물리며 파장을 키우고 있다. 강 회장은 2023년 말 농협중앙회장 선거 전후로 특정 업체로부터 두 차례에 걸쳐 총 1억원을 받은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서울경찰청 반부패범죄수사대는 지난 10월 농협중앙회 건물과 강 회장 사무실을 압수수색했으며, 강 회장을 출국금지 조치했다. 현직 농협중앙회장이 출국금지를 당한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수사 과정에서는 해당 업체 대표가 강 회장에게 “저는 잃을 게 없지만 회장님은 지킬 게 많으시죠?”라는 취지의 문자메시지를 보낸 사실도 드러났다. 당시 농협 계열사는 용역 계약을 경쟁입찰로 전환하려 했으나, 이 문자 이후 입찰 공고가 돌연 취소된 정황이 국정감사 등을 통해 공개되며 내부통제 체계가 제대로 작동했는지를 두고 의문이 커졌다.
또한 현재 수사 중인 해당 업체가 농협 계열사와 내년도 미화·주차 용역 계약 연장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업계 안팎에서는 “금품 제공 의혹과 압박 정황이 있는 업체와의 거래를 유지하는 것은 심각한 리스크 관리 실패”라는 비판이 나온다. 수사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시장에 부적절한 신호를 주고 있다는 지적도 뒤따른다.
농협중앙회는 최근 수의계약 원칙적 금지와 계약 단계별 내부통제 강화를 골자로 한 개선 대책을 내놓고, 중앙회 및 계열 금융기관 집행간부 상당수를 교체하는 대규모 인사를 단행했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가 집행부 차원의 쇄신에 그칠 뿐, 대통령이 지적한 조합장 중심 권한 구조와 중앙회장 리스크라는 근본 문제는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농협중앙회장은 전국 조합장 선거를 통해 선출되며, 지역 농·축협의 인사와 사업 전반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리다. 이 때문에 회장 개인의 비위나 사법 리스크가 곧 조직 전체의 신뢰 문제로 확산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비판은 오래전부터 반복돼 왔다.
강 회장 수사를 계기로 대통령이 직접 ‘구속·수사’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구조 개혁을 언급한 만큼, 농협을 둘러싼 조합장 권한 축소와 지배구조 개편 논의는 향후 더욱 본격화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