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령견과 생활하는 보호자라면 반려견의 치매는 한 번쯤 경험할 수 있는 변화다. 나이가 들면 수면 시간이 늘고 움직임과 반응이 느려질 수 있어 대부분 자연스러운 노화로 생각한다. 그러나 모든 행동 변화를 나이 탓으로만 돌려서는 안 된다.
개에게도 나이가 들면서 인지기능이 저하되는 ‘인지기능장애증후군(Canine Cognitive Dysfunction Syndrome•CCDS)’이 나타날 수 있다. 흔히 ‘강아지 치매’라고 부르는 질환이다.
강아지 치매는 나이가 들어 기억력이 다소 떨어지는 현상과는 다르다. 노령견의 뇌에서는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이 축적되고 염증과 산화 스트레스가 증가하면서 신경세포 사이의 연결이 손상될 수 있다.
기억과 공간 인지에 관여하는 해마에도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 일부 자기공명영상(MRI) 연구에서는 인지기능장애가 있는 노령견의 해마 용적이 같은 연령대의 정상 노령견보다 작게 관찰됐다는 결과도 보고됐다.
사람의 알츠하이머병과 유사한 점은 있지만 완전히 동일한 질환은 아니다. 여러 퇴행성 변화가 복합적으로 진행되면서 기억과 학습, 방향감각, 수면, 사회적 행동 등에 영향을 미치는 노화성 뇌질환으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
강아지 치매의 원인을 하나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산화 스트레스와 염증, 뇌혈관 기능 저하, 비정상 단백질 축적, 신경 네트워크 손상 등이 복합적으로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장 분명한 위험요인은 나이다. 연구마다 유병률에는 차이가 있지만 연령이 높아질수록 인지기능장애가 증가한다는 점은 공통적으로 확인된다.
문제는 초기 증상이 미묘하다는 것이다. 활동량이 감소하거나 잠이 많아져도 “나이가 들었으니까”라고 생각하기 쉽다. 가족에게 관심을 보이는 일이 줄어도 성격이 변한 것으로 여기다가 증상이 상당히 진행된 뒤 동물병원을 찾는 경우가 있다.
24시연희동물의료센터 황지혜 원장은 “노령견의 인지기능장애에서 나타나는 대표적인 행동 변화는 ‘DISHAA’라는 여섯 가지 영역으로 정리할 수 있다. 방향감각 저하(Disorientation)가 나타나면 익숙한 집 안에서도 방향을 혼동하거나 구석에 들어간 뒤 빠져나오지 못할 수 있다. 벽이나 허공을 오랫동안 바라보는 행동도 관찰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회적 상호작용(Interaction)이 달라져 가족을 반기는 행동이 줄거나 이름을 불러도 반응하지 않을 수 있다. 반대로 보호자를 지나치게 따라다니는 등 이전과 다른 의존 행동이 나타나기도 한다”고 전했다.
황지혜 원장은 “수면•각성 주기(Sleep-wake cycle)가 변하면 낮에는 오래 자고 밤에는 집 안을 서성거리거나 울고 짖을 수 있다. 배변 습관(House soiling)이 갑자기 달라져 평소 잘 가리던 장소가 아닌 곳에 대소변을 보기도 한다”고 전했다.
이어 “활동성(Activity)은 크게 감소하거나 반대로 특별한 목적 없이 같은 장소를 반복해서 걷는 형태로 변할 수 있다. 불안(Anxiety)이 증가하면 별다른 이유 없이 안절부절못하거나 혼자 남겨졌을 때 이전보다 심한 불안을 보일 수 있다. 특히 밤에 불안과 배회 행동이 두드러지는 경우가 많다. 이들 여섯 영역의 영어 첫 글자를 조합한 것이 DISHAA다. 보호자는 각 항목에 해당하는 변화가 일시적인지, 반복적으로 나타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다만 이러한 행동이 나타났다고 곧바로 치매라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청력이나 시력이 저하되면 부름에 반응하지 않거나 익숙한 공간에서도 머뭇거릴 수 있다. 관절염과 통증은 활동량을 감소시키며 신장질환이나 당뇨병, 내분비질환 등은 음수량과 배변 습관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뇌종양이나 뇌혈관질환, 발작과 같은 신경계 질환에서도 유사한 행동이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병원에서는 행동 변화가 시작된 시점과 진행 양상을 확인하고 신체검사와 신경학적 검사를 시행한다. 필요하면 혈액•소변검사, 혈압 측정, 영상검사 등을 통해 다른 원인이 있는지 살핀다. 인지기능장애는 다른 질환을 확인하고 배제하는 과정과 보호자의 행동 관찰을 종합해 판단해야 한다.
강아지 치매는 어느 날 갑자기 뚜렷하게 나타나기보다 작은 변화가 서서히 쌓이는 경우가 많다. 조기 발견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은 매일 반려견과 생활하는 보호자다.
수면 시간과 배변 습관이 달라졌는지, 가족을 대하는 모습에 변화가 생겼는지, 이유 없이 서성거리거나 익숙한 공간에서 머뭇거리는지 관찰해보자. 이상 행동이 나타난 날짜와 빈도, 지속시간을 기록하고 가능하다면 스마트폰으로 촬영해 진료할 때 보여주는 것도 도움이 된다.
황지혜 원장은 “평소와 다른 행동이 반복된다면 단순히 나이가 들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넘기지 말고 건강 상태를 확인해야 한다. 조기에 원인을 파악하면 치매와 비슷한 증상을 일으키는 다른 질환을 발견할 수 있고, 인지기능장애라면 증상과 진행 정도에 맞는 관리 계획을 세울 수 있다”고 전했다.
이어 “반려동물의 수명이 길어진 지금은 잘 먹고 잘 걷는지만 확인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반려견이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 주변 환경과 가족을 인식하고 있는지도 함께 살펴봐야 한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