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한테까지 숨겨 온 고통의 68년…
일제강점기 일본 군수공장에 끌려가 강제노역을 강요당한 뒤, 해방 후 고국에 돌아와서는 일본군 위안부라는 꼬리표까지 안고 살아야 했던 여자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들이 못다 한 얘기가 광복 68년 만에 법정을 통해 세상과 마주한다.
일제강점기 근로정신대로 동원된 피해자와 유족 5명이 일제 전범기업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사건번호: 광주지방법원 2012 가합 10852)한 가운데, 광주지법 민사 12부(이종광 부장판사)는 4일(금) 오후 2시 광주지방법원 204호 법정에서 원고측이 모두 참석한 가운데 구체적 피해 사실에 대한 증인 신문을 진행할 예정이다.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에 대한 사연은 보도 등을 통해 일부 알려지기도 했지만 사법부를 통해 구체적 증언이 이뤄지기는 광복 68년 만에 처음이다.
원고 중 한 명인 양금덕 할머니(84)는 1944년 5월경 “일본에 가면 돈도 벌고 상급학교에도 진학할 수 있다”는 일본이 교장의 말에 속아 나주초등학교 6학년 재학 중인 14세 나이에 나고야에 위치한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 항공기제작소에 끌려갔다. ‘공부시켜 준다’는 말은 새빨간 거짓이었다. 허기와 싸우며 하루 10시간에 가까운 중노동에 시달렸지만 임금 한 푼 손에 쥘 수 없었다. 구사일생으로 고향에 돌아왔지만 더 한 고통이 기다리고 있었다. 뒤늦게 일본에 다녀온 사실을 의심한 남편은 “일본에 가서 몇 명이나 상대했느냐”며 차갑게 외면하고 말았다.
이날 원고들은 일본인 교장의 말에 속아 끌려가게 된 경위, 비행기 공장에서의 참혹한 노동실태, 고향에 돌아온 후 일본군 위안부로 오인 받아 온전한 가정 한번 꾸릴 수 없었던 고통의 세월을 처음으로 풀어놓을 예정이다.
이날 재판에는 시민과 학생은 물론 일본에서 10년 넘게 피해 할머니들을 위해 지원활동을 펼쳐 온 일본 지원단체 관계자 12명이 광주를 찾아 이날 역사적 순간을 함께 지켜 볼 예정이다. 앞서 8월 3차 공판에도 재판방청을 위해 광주를 찾은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 지원회’ 다카하시 마코토 공동대표 등 일본 지원단체 관계자들은 3일 오후 광주에 도착, 2박 3일의 일정을 갖고 5일 출국한다.
김희용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대표는 "이번 재판에서 일제 때 속아서 끌려가 강제노역을 당했던 원고들의 한 서린 아픔과 세월의 증언이 있을 것"이라며 "재판 후에는 일본의 지원단체와 함께 한-일 평화교류를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상황에 따라 이날 원고 측 증인신문을 끝으로 변론을 종결하는 결심공판 가능성도 있어, 빠르면 연내에 1심 판결 선고도 점차 가시화되고 있다.
강제 징용 피해자들이 일본기업들에 대해 우리 사법부를 통해 소송을 제기한 적은 있지만 여자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들이 국내에서 일본 기업들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은 이번 사건이 최초로, 앞서 지난 7월 서울고등법원과 부산고등법원은 일제 강제 징용 피해자들이 제기한 소송과 관련해 피고 측 신일본주금과 미쓰비시중공업에 대해 각각 배상 판결을 내린 바 있다.
○ 문의: 이국언 사무국장(062-365-0815)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http://cafe.daum.net/1945-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