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객실승무원들이 편법 운영으로 겪고 있는 피로 누적과 비상식적인 스케줄 관리에 대한 내부 불만이 점점 거세지고 있다.
최근 현장에서는 탑승객 수가 적다는 이유로 승무원을 줄이고, 다시 인원이 늘면 무작위로 다른 승무원을 끼워 넣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이는 명백한 무계획 인력 운영이며, 승무원의 피로도와 업무 안정성을 무시하는 구조적 문제다.
승무원들에게는 월 8일의 휴일이 주어지지만, 이중 실제로 날짜가 지정된 휴일은 단 하루에 불과하다. 일반 사무직 직원이 월 10일 안팎의 정해진 휴일을 받는 것과 비교하면, 이 차이는 근본적인 노동 환경의 불균형을 보여준다. 여기에 ‘근무 대기(Reserve Flight)’ 제도까지 더해져, 비행 하루 전 저녁이 되어야 스케줄을 통보받는 일이 반복된다. 이러한 구조는 개인 일정, 병원 예약, 가족과의 약속 등을 완전히 무력화시키며, 실질적인 일상 파괴로 이어지고 있는 편법행위이다.
더 큰 문제는 스케줄이 없는 대기일이 단순히 ‘휴일’로 처리되어 통계상으로는 월 10일의 휴일이 보장된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이는 제도적 기만이며, 인력 운용상의 편의주의가 피로 누적이라는 심각한 문제를 포장하고 있다.
항공사의 일방적인 스케줄 변경과 무분별한 인력 배정은 「근로기준법」이 보장한 기본적인 노동권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 제50조는 1일 8시간, 주 40시간의 법정 근로시간을 규정하고 있으며, 제55조는 정기적인 유급 휴일 보장을 명시하고 있다. 특히 제56조는 심야·휴일 근무에 대한 추가 보상을 명문화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객실승무원들은 시차 뒤섞인 스케줄과 임의 휴일 변경, 반복적인 심야 운항 속에서 아무런 실질적 보상이나 회복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단순한 기업 운영의 문제가 아니라, 명백히 국가 차원의 노동기본권 침해이자 고용노동부의 직무유기에 해당할 수 있는 사안이다. 객실승무원의 현실은 ‘법정 기준만 충족’한 채, 내용상 건강권과 휴식권을 파괴하는 구조 속에 방치되어 있는 부당한 행위이다.
이런 상황에서 A 부사장이 최근 간담회에서 한 발언은 현장의 분노를 더욱 자극했다. 그는 “운항승무원은 법적으로 누워 쉴 수 있도록 되어 있지만, 객실승무원은 그렇지 않다. 일반직과의 형평성을 고려해 이코노미 좌석에서 쉬는 것이 맞다”고 밝혔다. 이 발언은 국내 법령과 국제 기준 모두를 왜곡한 주장으로 평가된다.
미국의 경우, 2003년 가을 미국 의회가 통과시킨 ’Vision 100 – 항공 재정법(Century of Aviation Reauthorization Act)’을 통해 객실승무원 자격 인증 제도가 도입되었다. 이 법에 따라, 2004년 12월 11일 이후부터는 연방항공청(FAA)이 발급한 객실승무원 숙련 인증서(Certificate of Demonstrated Proficiency) 없이는 어떤 항공사 소속 항공기에도 객실승무원으로 탑승할 수 없게 되었다.
유럽연합도 마찬가지로, EU 집행위원회 규정 No 1178/2011을 통해 객실승무원(Cabin Crew Member)을 “운항 중 승객 및 비행의 안전과 관련된 업무를 수행하도록 지정된 자격을 갖춘 인력”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들은 조종 승무원과 함께 항공 승무원(Aircrew)에 포함되며, 반드시 유럽항공안전청(EASA)에서 인증한 훈련기관을 통해 훈련을 받고 Cabin Crew Attestation (CCA)을 취득해야만 객실근무가 가능하다.
이와 같은 국제 기준을 고려할 때, A 부사장의 발언은 법적 무지에서 비롯된 위험한 인식이며, 국토교통부와 고용노동부는 해당 발언의 법적 적정성과 대한항공의 인력 운영 전반에 대해 즉각적인 조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현장의 실태는 더욱 심각하다. B777이나 B787-10 같은 대형 항공기에서는 장거리 비행 중에도 한명의 객실승무원은 일반 승객 옆 이코노미 좌석에서 휴식을 취해야 한다. 특히 A330-300 기종이 투입되는 두바이와 같은 장거리 노선의 경우, 승무원 전원이 휴식 공간 없이 객실 내 일반 좌석에서 버티는 실정이다. 이러한 현실은 ’피로위험관리시스템’이 명목상으로만 존재하고, 실제로는 인건비 절감만을 위한 형식적 제도로 전락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나라는 과거 이보다 훨씬 더 열악한 항공안전 환경을 겪은 바 있다. 2000년까지 거의 매년 항공 사고가 발생했고, 2001년에는 미국 연방항공청(FAA)으로부터 항공안전등급 심사 결과 안전 미흡 국가 판정을 받았다. 이로 인해 우리 정부는 항공안전 시스템 전반을 대대적으로 쇄신했고, 이후 안전관리 체계와 인프라를 정비하며 지금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항공안전 국가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다시 그 시절의 경각심을 잃고 안일함에 빠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발생한 무안공항에서의 제주항공 참사, 그리고 에어서울 항공기에서 이동 중 승객이 출입문을 개방한 사건은 이러한 우려를 방증한다. 두 사건 모두 기본적인 국토교통부의 안전관리 미흡과 긴장감 저하가 빚은 사고라는 점에서, 단순한 일회성 문제가 아니라 우리 항공안전 시스템 전반에 경고등이 켜졌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야 한다.
국토교통부의 안일한 태도는 이제 구조적 위기로 이어지고 있다. 겉으로는 ‘세계 최고 수준의 안전’을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로는 항공사의 비용절감과 편의주의를 묵인하고 있으며, 피로도 관리·자격 체계·인력 기준 등 기초적인 안전 시스템조차 실질적으로 점검하거나 개입하지 않고 있다.
객실승무원은 항공안전법상 “항공기에서 비상탈출 등 안전업무를 수행하는 승무원”으로 정의되어 있다. 비상 상황 발생 시 수백 명의 승객을 구조하고 탈출을 유도하는 역할을 맡는 항공안전의 최전선에 있는 인력이다. 그럼에도 한국 정부는 아직까지 이들을 ‘항공종사자’로 공식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실질적 권한은 주지 않은 채 의무만 부과하고 있다. 이 같은 이중 잣대는 현장에 왜곡된 인식과 과도한 노동 강도로 이어지고 있으며, 피로 누적에 대한 안전 책임 역시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
한 승무원의 발언이 이 모든 현실을 대변한다. “지금도 수천 명이 시차에 뒤엉켜 잠 못 자고, 승객 옆에서 쉬며, 바뀐 스케줄 때문에 병원 예약을 취소하고 있어요. 이게 정말 ‘메가 캐리어’입니까?”
정부인 국토교통부와 고용노동부는 지금 즉시 대한항공의 피로도 관리 체계와 인력 운용 실태에 대해 전면 조사에 착수해야 한다. 더 나아가 객실승무원을 실질적인 항공종사자이자 노동자로서 정당하게 인정하고,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제도 개선과 근로기준법 적용의 형식적 왜곡을 바로잡는 작업도 시급히 이루어져야 한다. 지금처럼 눈을 감고 외면하는 방식으로는 항공안전도, 노동 인권도, 국민 신뢰도 모두 무너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