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국내 과학기술 연구진을 대상으로 한 기술 포섭 시도를 여전히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KAIST 교수 149명이 중국 정부의 지원을 내세운 인재 유치 명목의 이메일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으며, 국가정보원은 이를 ‘천인계획(Thousand Talents Plan)’의 변종 형태로 판단했다.
23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최수진 의원(국민의힘)이 KAIST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초 KAIST 교수진 149명이 ‘중국의 글로벌 우수 과학자 초청 사업’이라는 동일한 제목의 이메일을 수신했다.
이메일에는 “중국 정부의 지원으로 해외 우수 인재를 초청한다”는 문구와 함께 연간 200만위안(약 4억원)의 급여, 주택 및 자녀 학자금 지원 등의 조건이 제시돼 있었다.
KAIST 연구보안팀은 신고를 받고 자체 조사를 진행했으며, 국정원은 전국 주요 대학과 출연연을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실시해 유사 사례가 다수 존재함을 확인했다.
이후 KAIST는 전 교수진에게 “중국발 인재 유치 이메일이 대량 유통되고 있다”며 즉시 신고를 권고하는 공문을 발송했다.
국정원은 “천인계획은 단순한 인재 유치 프로그램이 아니라, 해외 핵심 기술 확보를 위한 중국의 국가 차원 전략적 포섭 사업”이라고 분석했다.
KAIST 연구보안팀 또한 “유사한 형태의 이메일이 매달 2~3건씩 꾸준히 접수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교수 자율 신고에 의존하는 현 제도로는 구조적 대응이 어렵다는 점이 지적된다.
KAIST는 강제 조사권이 없어, 신고하지 않은 교수의 경우 별다른 제재가 불가능한 실정이다.
실제 KAIST에서는 지난 2020년 ‘천인계획’에 참여한 교수가 자율주행차 핵심 기술을 중국에 유출한 사건이 적발된 바 있다.
이후 ‘천인계획’ 명칭이 사라졌지만, 최근에는 ‘Foreign Expert Project’, ‘Qiming’, ‘China Talent Innovation Hub’ 등 이름만 바꾼 변종 프로그램이 등장해 국내 연구자들에게 접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의 설문조사(올해 5월) 결과에서도 이 같은 추세가 확인됐다.
회원 200명 중 123명(61.5%)이 최근 5년 내 해외 기관의 영입 제안을 받은 적이 있다고 답했으며, 이 가운데 82.9%가 중국으로부터 제안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과 유럽은 이미 악의적 해외 인재 유치 프로그램(Malign Foreign Talent Recruitment Programs)에 대한 대응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은 해당 프로그램 참여 연구자에게 연방 연구비 지원 제한을 적용하고, 해외 기관 소속 및 보조금 수령 이력 공개를 의무화했다.
영국은 National Security and Investment Act에 따라 해외 기관과의 협력 시 정부 사전 승인을 요구하고 있으며, 유럽연합(EU) 또한 Foreign Interference in Research Framework를 통해 외국 정부 개입 위험이 있는 연구 협력에 대해 사전 위험평가 의무화 제도를 운영 중이다.
반면 한국은 교수 자율 신고와 내부 경고 수준에 머물러 있어, 제도적 대응 공백이 여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수진 의원은 “국내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해외의 기술 탈취 시도는 더욱 노골화될 것”이라며 “연구 보안이 곧 국가 보안인 만큼 국가연구개발 혁신법 개정안을 조속히 통과시켜 연구기관이 즉시 대응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개정안에는 연구과제 보안등급 세분화와 연구보안 전담조직 설치 근거가 담겨 있어, 현장에서 실질적인 보안 대응이 가능하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