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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문턱에 선 녹십자, 허일섭 사촌경영과 재단지분이 만든 불편한 구조

외형은 대기업, 구조는 가족경영… 공시대상기업집단 앞두고 지배구조 검증 불가피
사촌경영 전환기 맞은 녹십자, 공익재단 지분 15%가 향후 향배 가를 변수로

 

대기업집단 편입을 앞둔 녹십자그룹이 외형 성장과 함께 지배구조 전반에 대한 본격적인 검증 국면에 들어섰다. 자산 5조원을 넘기며 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이 유력해졌지만, 허일섭 회장을 중심으로 형성된 사촌경영 체제와 공익법인이 얽힌 지분 구조가 향후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5조 넘긴 외형 성장, 대기업집단 문턱에 서다

 

7일 재계에 따르면 녹십자그룹의 자산 규모는 2024년 말 4조8353억원에서 2025년 9월 말 5조5140억원으로 6788억원(14.0%) 증가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이를 확정할 경우 녹십자그룹은 바이오 업계에서 셀트리온에 이어 두 번째 공시대상기업집단으로 지정된다. 외형 성장의 핵심 축은 GC녹십자다. GC녹십자는 2025년 9월 말 기준 별도 자산 2조5226억원으로 그룹 전체 자산의 45.7%를 차지하고 있다.

 

녹십자그룹의 지배구조 정점에는 녹십자홀딩스가 있다. 창업주 고 허채경 회장 이후 그룹의 기틀을 다진 인물은 차남 고 허영섭 회장이었고, 현재는 그의 동생인 허일섭 회장이 그룹을 이끌고 있다. 지난 20여 년간 녹십자그룹은 허일섭·허영섭 회장의 자녀 세대가 함께 경영에 참여하는 ‘숙부–조카 공동경영’ 구조를 유지해 왔다.

 

허영섭 회장의 차남 허은철 대표는 1998년 입사 이후 연구·기획 부문을 거쳐 2015년부터 GC녹십자를 이끌고 있으며, 삼남 허용준 사장은 현재 녹십자홀딩스 대표이사로 지주사를 맡고 있다. 장남 허성수 전 부사장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지분도 대부분 정리한 상태다.

 

숙부–조카에서 사촌경영으로… 달라지는 권력의 무게중심

 

최근에는 허일섭 회장의 장남 허진성 전무가 녹십자홀딩스 경영관리본부장에 올라 지주사의 재무·투자·회계를 총괄하면서 경영 구도의 변화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이 자리는 과거 허용준 사장이 대표이사에 오르기 전 맡았던 핵심 요직으로, 재계에서는 숙부–조카 체제 이후 사촌경영으로의 전환 신호로 해석하고 있다. 

 

허일섭 회장은 2025년 말 기준 녹십자홀딩스 지분 12%대 초반을 보유한 최대주주다. 배우자와 자녀 지분을 합치면 허 회장 일가의 지분은 약 14% 수준으로 확대된다. 반면 허영섭 전 회장 직계인 허은철·허용준 사장의 개인 지분은 각각 2%대에 그친다. 허영섭 회장 별세 이후 지분이 배우자와 자녀, 공익법인 등으로 분산되면서 단일 지배 블록을 형성하지 못한 영향이라는 평가다.

 

재단 지분 15%와 동일인 지정, 지배구조의 시험대

 

여기에 공익법인이 보유한 지분이 향후 경영권 향배의 핵심 변수로 꼽힌다. 목암생명과학연구소(8.72%), 미래나눔재단(4.38%), 목암과학장학재단(2.10%) 등 공익법인이 보유한 녹십자홀딩스 지분은 합산 약 15%에 달한다.

 

이들 재단은 주요 안건에 대해 의결권 행사가 가능한 주주로, 이사진에 허일섭 회장과 허은철·허용준 사장 등 오너 일원이 다수 포함돼 있다. 공익법인의 독립성이 충분히 담보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는 이유다. 공시대상기업집단으로 지정될 경우 이러한 구조는 공정위와 시장의 직접적인 점검 대상이 된다.

 

또 녹십자그룹과 뿌리를 같이하는 한일시멘트 오너 일가 등 방계 친족이 보유한 지분 약 8%대와 국민연금이 보유한 6%대 지분 역시 향후 의사결정 과정에서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정 시점에 지분 연합이 형성될 경우, 사촌경영 체제 전환 과정에서 미묘한 긴장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재계에서는 공정위가 동일인(총수)을 지정할 경우 허일섭 회장이 자연인 동일인으로 지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동일인 지정 시 4촌 이내 혈족과 3촌 이내 인척까지 동일인 관련자로 묶이게 되면서, 지금까지 비교적 조용히 유지돼 온 사촌경영 구조도 공개적인 검증 대상이 된다.

 

GC녹십자의 2025년 지배구조 핵심지표 준수율은 66.7%로 자산 2조원 이상 기업 평균과 유사한 수준이지만, 지주사인 녹십자홀딩스는 46.7%에 그쳐 15개 핵심지표 중 7개만 충족했다. 공시대상기업집단으로 지정되면 승계 정책 공개, 내부통제 및 감사 기능 강화, 특수관계인 거래 투명성 제고 등에서 이전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기준이 요구된다.

 

외형 성장을 통해 대기업집단 문턱에 선 녹십자그룹은 이제 ‘규모’가 아닌 ‘구조’의 시험대에 올랐다. 공시대상기업집단 편입 이후에도 사촌경영 체제가 안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을지, 그리고 공익법인과 방계 지분을 둘러싼 이해관계를 어떻게 정비할지가 향후 그룹의 지속 가능성을 가늠하는 핵심 과제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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