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강북권 최대 재개발 사업인 한남4구역의 시공권을 놓고 삼성물산과 치열한 경합을 벌이고 있는 현대건설이 한남3구역에 비해 뒤쳐진 사업제안을 내놓아 한남4구역 조합원들의 비난이 이어지는 가운데 이 회사의 재무건전성 악화가 향후 압구정, 성수 등 전략 수주지역에서 큰 변수가 될 전망이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건설이 무리한 수주로 인해 11조원이 넘는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리스크를 떠 앉으면서 재무건전성 악화가 심해지고 있다. 최근 신동아건설도 법정관리에 들어가는 등 건설사의 재무부담도 심해지고 있어 자칫 현대건설을 시공사로 선정한 조합원들에게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작년 3분기말(11월 25일) 기준 현대건설의 PF대출 관련 보증금액은 11조2500억원이다. 이중 정비사업이 5조5600억원, 브릿지론 3조5700억원(지식산업센터 2조7900억원), 기타 PF 2조1100억원에 달한다. 10대 건설사 중 현대건설이 가장 규모가 크다.
현대건설은 한남4구역에서 필수사업비에 한해 CD+0.1%의 금리로 책임조달하는 조건을 제안했는데 회사의 재무건전성 등을 놓고 볼 때 실현 가능성이 제로에 가깝다는 것이 업계 중론이다. 뿐만 아니라 조합원들과 관련성이 높은 사업촉진비나 추가이주비에 대해서는 동일금리(CD+0.1%)를 적용하지 못하고 한남3구역과 같은 고금리가 적용될 전망이다.
또 현대건설이 한남4구역보다 기 수주한 한남3구역을 우선시한 사업제안을 내놓은 것으로 알려져 차별 논란도 나온다. 한남4구역 입찰제안서가 설계부터 공사비 등 여러 조건에서 한남3구역보다 좋지 않은 조건이 담겨 조합원들의 불만도 커질 전망이다.
◆한남3구역 대비 불리한 조건, 한남4구역 조합원 부담 커질 듯
업계에 따르면 최근 한남4구역 조합원들 사이에서 현대건설의 입찰제안서가 기존에 현대건설이 수주한 한남3구역보다 불리한 조건이 담겨 불만이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건설의 한남4구역 입찰제안서는 ▲공사비 물가인상분 반영 ▲지연배상금 규모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보증 없다는 약속 ▲내진설계 특등급 적용 등 7개 항목에서 한남 3구역보다 불리하거나 부족한 조건이 담겼다.
공사비 물가인상분의 경우 한남 3구역에서는 입찰일부터 3년간 공사비 인상분을 선반영(공사비 고정)한다고 했지만 한남4구역은 이 내용이 빠졌다. 지연배상금 규모도 한남3구역에서는 총공사비의 10%를 반영한다고 했지만 한남 4구역에서는 5%만 반영키로 했다.
한남 3구역에서는 HUG 보증없이 사업비를 조달해 보증수수료를 절감하겠다고 약속했지만 한남 4구역에서는 제외됐다. 앞서 현대건설은 여의도 한양아파트 수주전에서 신용등급(AA-)을 통해 업계 최저수준의 금리 조달을 약속했고, HUG보증을 받지 않기 때문에 보증수수료도 절감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한남3구역에서도 HUG보증이 없기에 보증수수료를 약 1090억원 절감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보증수수료 절감은 곧 조합원들의 분담금 감소와 관련 있다.
하지만 한남 4구역에서 이러한 내용이 빠진 것은 현대건설의 재무부담이 악화되면서 HUG 보증 없이는 사업이 어렵기 때문으로 보인다. 향후 현대건설이 HUG 보증을 받게 될 경우 분양가가 통제되며, 조합에 불필요한 수수료 부담이 전가될 수밖에 없을 전망이다.

대안설계 인허가비용 부담 금액도 한남 3구역의 경우 전액 부담하기로 했으나 한남 4구역에서는 금액을 명기하지 않았다. 한남3구역에 적용되는 내진설계 특등급 적용도 한남 4구역에는 내진설계 1등급 적용으로 낮춰졌다. 층간소음방지를 위한 슬라브 두께도 한남 3구역 260㎜ 보다 얇은 240㎜가 적용된다.
과거 GS건설도 서초 신동아 정비사업에서 시공사 선정을 앞두고 있었지만 인근에서 기 수주한 서초 무지개아파트와 비교당하면서 결국 정비사업을 포기했다. 이에 현대건설 역시 한남 3구역과 비교 당하면서 한남4구역 사업을 지속하기는 사실상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보통 한 시공사가 바로 옆 재개발사업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데 현대건설이 무리한 사업을 추진하다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칠 수 있다”며 “시공사 선정이 되더라도 조합원들끼리 수시로 비교를 하면서 현대건설을 압박하게 되면 사업차질이 불가피하다”고 전했다.
◆현대건설, 미수액 규모 1위로 조합원 부담 커질 듯
현대건설의 재무 건전성 악화도 한남 4구역에서 조합원들에게는 악재다. 지난해 3분기 기준 미수액 규모가 가장 큰 건설사는 현대건설로 4조9099억원으로 집계됐다. 2023년 말 3조3233억원 대비 47.7% 급증했다. 현대건설의 미수액 규모는 10대 건설사 중 1위다.
윤영준 전 현대건설 대표이사 시절 무리하게 수주를 늘리면서 부실 사업장이 늘었고 이로 인해 미수액과 PF대출 규모가 급격히 늘어났다. 지난해 말 PF 대출 규모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여전히 비용 부담이 커지고 좀처럼 수익성 개선에 나서지 못하면서 그룹 차원의 수장 교체가 단행된 바 있다.
새롭게 이한우 대표가 주택사업부에서 왔지만 직급은 부사장이다. 기존 대표이사가 사장급이었으나 이번에 부사장급으로 한 단계 내려갔다. 업계에서는 그만큼 권한이 약해지면서 현대차그룹에 자금 지원을 받기가 어려워질 수 있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 현대건설의 재무 건전성이 악화되면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이 어려워지고 단기로 고금리의 자금을 끌어올 수밖에 없어 조합원 분담금이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심할 경우 사업이 중단돼 정비사업 도중 시공사를 바꾸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나거나 공사비 증액을 요구하는 사례가 늘 것으로 전망된다.
향후 미분양, 공사 지연 등으로 인해 PF 대출 상환 지연이 일어날 경우 현대건설이 즉시 채무 상환에 나서야 하며 이로 인해 신용등급이 하락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대출 이자가 폭증하면서 공사비도 증액돼 정비사업 조합과 갈등에 빠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최근 신동아건설도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신동아건설이 시공하는 ‘검단신도시 파밀리에 엘리프’의 청약이 전격적으로 취소된 바 있다.
또 PF 금리는 건설사 신용등급과 연동되므로 대출금리 폭증이 이뤄지기도 한다. 2021년 롯데건설의 유동성 위기 시 PF 금리가 연 6~8%에서 12~20%로 올라간 바 있다. 현재 현대건설은 브릿지론이 있는 지식산업센터 사업장이 2개로, 총 8조원에 달한다. CJ 가양동 부지 5조원, 가양동 이마트 부지 3조3000억원이다. 두 곳 모두 공급물량 과다로 대규모 미분양, 공실이 발생하고 있는 강서구에 위치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건설은 재무부담이 커지면서 원자재 가격 상승과 금리 인상을 이유로 공사비 증액 요구도 많아지고 있다”며 “현대건설은 과천 8·9단지 재건축 조합에 공사비를 3.3㎡당 550만 3000원에서 775만 3000원으로 50.8% 인상해달라고 요구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