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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소송, 사전에 조정 과정 거치는 것이 먼저

 

배우자의 유책 사유를 다투는 재판 이혼 전 우리나라는 조정 과정을 거치고 있다. 이를 조정 전치주의라고 한다. 쉽게 말해 조정 절차를 통해 소송이 아닌 서로 협의할 수 있도록 법원이 직접 중재자 역할을 자처하는 것이다. 얼핏 생각하면 재판이 더 나을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재판으로 넘어갈 경우 시간, 비용이 많이 드는 만큼 조정 과정을 먼저 거치는 게 좋다. 법원이 중재자 역할을 하는 만큼 양측이 합리적인 부분에서 양보 및 협의가 가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산 법무법인 구제 변경민 이혼변호사는 “조정 이혼은 조정조서를 작성하는 순간 판결과 동일한 효력을 발휘한다. 따라서 상대방이 약속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즉시 강제집행이 가능하다. 그만큼 협의이혼보다는 법적 구속력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장점이다”고 설명했다.

 

이어 “또한 재판 이혼과 다르게 시간과 비용을 적게 쓸 수 있다. 특히 재판부의 판단이 아니라 부부 양측의 이견을 조율하는 만큼 더 자유로운 조건 협의가 가능하다. 따라서 재판 전 조정은 이제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생각하는 부부가 많다. 그렇다면 조정 이혼을 하는 과정에서 주의해야 할 점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재판 준비를 하면서 조정에 임해야 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조정이 언제든지 결렬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준비해야 한다”고 전했다.

 

물론 조정 과정은 양측의 협의를 법원이 중재한다는 점에서 합리적인 의견이 오갈 수 있다. 하지만 상대방의 유책이 크거나 전혀 협의가 안되는 경우, 이때는 재판 외에는 방법이 없다. 따라서 재판을 염두에 두고 발언 및 증거를 준비해 제시해야 한다.

 

변경민 변호사는 “조정을 하게 된다면 발언 하나, 조항 하나 모두 검토해야 한다. 한 번 결정된 조정조서는 강제력을 지니는 만큼 뒤늦게 자기 말을 뒤집거나 조항을 수정할 수 없다. 따라서 이러한 점을 생각해서 조정 과정부터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조정 과정에서 감정적인 대응은 오히려 사건을 어렵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이어 “특히 양육권, 재산분할, 위자료를 다퉈야 할 때는 감정이 아니라 확실한 증거를 바탕으로 주장하는 게 좋다. 단순한 주장만으로는 조정 과정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그런 만큼 현실적인 사건 대응을 위해서라도 조정 전 법적 검토는 필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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