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시장격리 의무화를 골자로 한 양곡관리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3.23)한 이후 여야(與野)간 농업문제를 둘러싼 정쟁(政爭)이 극에 달해 있다. 농업문제의 본질이 사라진 정치권의 찬반 논쟁은 시급한 농업현안마저 삼키는 블랙홀(Black hole)이 되어 버렸다.
역설적으로 이번 사태의 파장이 농민들에게 직격탄으로 돌아오고 있다. 30년만의 최악의 가뭄, 원자재·사료가격 및 인건비 상승, 국내외 농업인력 부족문제, 토마토값, 호박값, 소값 등 농축산물 가격폭락, 꿀벌 집단폐사 등으로 현장농민들의 시름은 날로 더하고 있다. 또한 정부가 추진 중인 IPEF(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 CPTPP 가입 등 농업통상 문제에 대한 기민한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 국회가 농민 및 농업전문가(학계) 의견을 수렴하고 입법, 재정, 국정운영 감시 등을 통해 정부로 하여금 올바른 농정(農政)을 유도해야 한다. 정치권이 농민의 민생문제는 뒷전인 채 제대로 된 토론 하나 없이 정치셈법으로 농업문제를 이슈화하는 것은 역대 유례가 없는 사태다.
가장 심각한 것은 이번 사태로 인해 농업과 쌀에 대해 국민들에게 좋지 않은 이미지를 심어주고 있다는 것이다. 시장원리가 아닌 식량안보측면에서 농업문제를 접근하여 농민을 보호하는 농정을 수립하고 이에 따른 재정투입의 불가피성에 대해 국민들에게 설득하는 것이 정부와 정치권의 역할이다. 지난 4월 6일 정부가 발표한 쌀값 안정, 직불금 확대 등 농업전반의 후속대책에 대해, 국회는 건전한 토론문화를 통해 단계적 이행계획 수립을 비롯한 정부대책을 점검하고 이행수단을 보완하는 등 대책이 제대로 작동될 수 있도록 입법과 예산확보 등에 온 힘을 다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농정방향은 식량안보다. 정부와 정치권이 합심하여 쌀뿐만 아니라 농축산물 전반에 대해 식량자급률을 개선하고 농가소득 안정과 경영안전망 장치를 강화하는 방향의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 특히 고령화에 따른 농촌 소멸이 예정된 상황에서 지금은 농업·농촌을 살리는 묘책을 찾는 데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시점이다. 정치권은 이번 사태를 봉합하기 위해 국회 농해수위 내 특위 구성 등 합리적 대화창구를 통해 식량안보를 중시한 대안을 마련하라! 진영(陣營)의 입장을 떠나 마주보며 대화를 하면서 민생문제의 해법을 찾아 나가는 것이 올바른 정치다.